친일파의 지위를 강화해왔고, 국민들에게는 친일파 문제나 그 이후 여러 가지 큰 정치·경제·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그렇고 그런 것 아니냐...'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위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친일파의 형성과정, 일제시기의 행동양태, 해방후재등장구조를 살펴보고자 한다.
국가권력마저 장악하는 사태에 이르게 되고, 독립운동을 하였던 사람들은 핍박받고 역사의 뒤켠에 웅크려 지내야만 하는 희한한 역사가 전개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과연 친일파는 어떻게 형성되고 그들의 매국과 친일의 논리는 무엇인지를 살피고 해방이후재등장의 역사를 추적하여 보기로 한다.
. 손홍원은 면포도매업자인데, 국민훈련후원회를 만들고 방학중 귀향하는 학생을 통해서 브나로드 운동식으로 일어 전해운동을 벌였다. 손영목은 밀양 창원 경산군수 기타를 한 손지현의 아들인데, 강원 경북지사를 한 후 만주척식공사 이사로 이민사무에 관여했던 부자 2대에 걸친 친일파였다.
해방전쟁론
이들의 이러한 역사인식은 일제시대의 황국사관을 그대로 옮긴 것이나 다름이 없다.
2)역사왜곡의 문제점
일본의 정치권은 군사적인 역량을 확대하여 외교적 역량을 강화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계획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역사왜곡은 그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친일분자와 영합한 것으로 규정하였는데 이는 북한도 친일파 숙청이 친일파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북한의 친일파 숙청은 1946년 2월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수립을 전후하여 민주개혁의 일환으로 자리 잡았다. 같은 해 2월 8일의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창건에 대한 북조선 각 도
친일파에 대한 논의를 그저 ‘나쁜 놈, 매국노, 권력에 빌붙어 잘 먹고 잘살았던 파렴치한’이라는 식의 도덕적 비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였다. 김민철「시론-지금 친일파 청산을 거론하는 이유」『역사비평』2002 여름호
그 사람이 어떠한 배경에서 어떠한 논리로 친일행위를 했고, 친일파로 규
가장 절박한 과제였다.
3. 미 점령정책과 친일파재등장(구조 바꿈의 실패)
송남헌은 친일파 천산 좌절의 결정적 요인은 반공, 반소, 반탁을 기치로 과거의 민족반역자나 친일파가 애국자로 둔갑되는 세상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역사적 조건의 발생은 바로 반공, 반소, 반탁
행위로 처벌받아 마땅하며 훼손된 국가의 정통성과 존엄성을 위해서 친일세력을 청산해야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후자는 친일은 당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친일을 하지 않은 자가 어디 있겠냐는 공범론을 비롯해 이미 흘러간 과거로 대부분 죽은 친일파를 어떻게 재판할 것이냐며 친일파